흔들려도 괜찮아, 다시 나로 걷는 아침
비교의 그림자 속에서 나를 다시 붙들다
어제는 친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친정에 다녀왔다.
갈 때는 예전 직장에서 알게 되어 친하게 지낸 언니도 함께였다.
친구는 나와 동갑이라 마음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이지만, 언니와는 그렇지 않다.
언니는 자기 삶만으로도 버거워 보여서, 나는 늘 내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지내왔다.
그래서 이번에는 언니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함께 가자고 했는데, 다녀오고 나니 마음이 오히려 편하지 않았다. 사실은 친구와 단둘이 가고 싶었던 내 마음을 눌렀던 탓일까.
친정 엄마는 여전히 내 손에 이것저것 챙겨주셨다.
나 뿐 아니라 함께 간 친구와 언니에게도 음식을 싸주며 “우리 딸이랑 놀아줘서 고맙다”라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하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조금 서운했다.
아이들이 어릴 적, 내가 아이 친구들에게 먹을 것을 사주며 잘 지내라고 하던 모습이 겹쳐졌다.
엄마는 아직도 나를 어린애처럼 여기시는 건 아닐까.
나에 대한 믿음보다는 걱정과 우려가 더 크신 건 아닐까.
나는 지금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데, 그런 엄마의 마음이 오히려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딸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고, 그 결과를 존중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언니는 내 말에 답답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엄마는 정보를 던져주는 거야. 그냥 알려주는 거야. 그러면 언젠가 도움이 되지.”
나는 대꾸하지 못했다.
끝내 건성으로 맞장구치며 대화를 끝냈지만, 마음 한쪽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집에 돌아오니 공허함이 몰려왔다.
친정 엄마가 싸주신 밥과 포도를 먹으면서도 속상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고, 새벽까지 넷플릭스를 보며 두통에 시달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런 자리에 나를 자꾸 끌고 들어가는 것도, 결국은 나 자신이라는 것을.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내가 언니처럼 살았다면, 친구처럼 직장을 놓지 않았다면, 지금은 달라졌을까?”
이 질문은 곧 타인과의 비교로 이어진다.
‘언니는 땅과 집을 갖고 있고, 친구는 아파트 두 채와 든든한 배우자가 있다.
그런데 나는?’
마음은 그렇게 쉽게 비교의 늪으로 빠져든다.
하지만 곧 깨닫는다.
비교는 감정이 만들어낸 그림자일 뿐이라는 것을.
내가 이미 세운 기준은 “아이들은 그들의 삶을 살고, 나는 내 삶을 산다”는 단순하고도 분명한 철학이다.
흔들릴 수는 있다. 그러나 다시 돌아올 자리는 언제나 내 자리다.
오늘 아침, 나는 나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비교는 순간의 그림자일 뿐, 나의 가치는 흔들리지 않는다.
나는 나의 길 위에서, 오늘도 충분히 잘 살아가고 있다.
이 짧은 문장은 지금의 나를 붙들어주는 다짐이 되었다.
나는 흔들려도 괜찮다.
중요한 건 흔들릴 때마다 다시 나의 중심으로 돌아오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도, 그렇게 다시 나로 걷는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