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남긴 상처와 다짐 - 이제는 내 삶을 살아가기로 한다

추석, 떠오르는 생각들


스마트폰 문자함을 정리하다가, 한살림에서 보내 온 문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추석 제사 음식 할인”이라는
문장을 읽는 순간,

가슴 한쪽이 욱신거렸다.

그 문자는 나에게 단순한 안내 문자가 아니었다.


나의 오랜 명절과 제사 준비의 기억,
그리고 침묵 속에서 삼켜야 했던 감정들

한꺼번에 떠올랐다.


결혼 초부터 시어머니는
명절과 기제사의 모든 준비를 당연하다는 듯 내게 맡기셨다.

처음엔 서툴렀지만,
친정 엄마가 하시던 걸 보며 자란 터라
조금씩 익숙해졌다.

어릴 적 명절은 그저 즐겁기만 했다.
북적이는 친척들과 맛있는 음식들,
나는 마냥 신나는 아이였고 명절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준비하는 사람이 되어보니,
엄마가 얼마나 힘드셨을지 새삼 느껴졌다.
그 시절의 내가 미안해졌다.


시어머니와 시동생은 명절 전날 와서
제사만 마치면 바로 돌아갔다.

하지만 해본 사람은 안다.
제사 준비는 단순히 음식 몇 가지를 차리는 일이 아니라는 걸.

손님을 맞이하려면 집안을 대청소 해야 하고,
제사 음식 외 별도의 음식도 따로 준비해야 한다.
명절이 다가오면 며칠 전부터 장을 보러
여러 번 시장을 오가야 했다.

추석을 앞두고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을 걷는 중년 여성의 수채화풍 삽화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아파트에서 시장까지 익숙한 길을 걸어가는 일이,
어느 순간부터 점점 더 힘겨워졌다.

그래도 말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제사 지내기 싫어서 그런다"고
오해 받을 까봐.
그저 묵묵히 했다.


50대가 되면서 체력은 예전 같지 않았다.
그래서 배달로 제사 음식 재료를 주문하고,
빠진 것들만 직접 장을 봤다.

음식 종류를 줄이진 않았다.
시어머니가 "조금이라도 정성껏 하면 돼"라고 하셨기에,
적은 양이라도 마음을 담아 정성껏 준비했다.


중년 여성이 전을 부치고 아이들이 도와주는 제사 준비 장면의 수채화 일러스트

다행히 아이들이 늘 도와줬다.
전도 부치고, 깨소금도 만들며
내 옆을 지켜줬다.

알아서 도와주면 주면 좋은데, 남편은 그런 사람은 아니다.
대신에 청소를 부탁한다.
남편은 청소기를 돌려주는 정도로 자신이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이 청소도 말을 하지 않으면 안 하는 그런 거였지만.

남편은 제사를 지낼 때면 밤만 깠다.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제사는 남편 집안 조상을 위한 일인데,
모든 준비는 늘 나의 몫이었다.



결국 우리는
제사를 그만두기로 했다.
남편이 시댁에 직접 이야기했다.

하지만 1년 뒤,
구정 무렵 시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남들도 다 하는 일인데, 그냥 하지 그러니.”

그 말을 듣는 순간,
속에서 뜨겁게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남들도 다 한다"는 그 말.
그렇다면 왜 당신 아들은 '남들처럼' 하지 않았을까요?

그 당시에는 생각만 했던 그 말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다.

내가 말한 ‘남들처럼’
겉모습을 따라 하라는 뜻이 아니었다.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집을 지키고,
아이들에게 상처 주지 않는 아빠로 살아주고,
주식에 몰두해 가정 경제를 내팽개치지 않는 사람.
함께 살아가는 책임을
묵묵히 감당하는 그런 남편.

나는 과한 걸 바란 게 아니었다.
결혼한 사람이라면
가정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건
너무도 기본적인 상식이었다.

그걸 배우지 못했다면
스스로 배워야 하는 거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계속 책을 읽는다.
나의 무지로 인해
인생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배우고, 또 배우며 살아가려는 것이다.

하지만 남편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럴 의지도, 노력도 없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커피 한 잔을 곁에 두고 조용히 앉아 있다.

창가에서 커피를 마시며 고양이가 무릎에 앉았다 내려가는 장면의 수채화풍 삽화

잠시 내 무릎 위에 올라왔던 복순이는
꾹꾹이를 하러 왔다가
내가 아프다고 하니
슬그머니 내려갔다.

꾹꾹이 하나에도 무의식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게 참 신기하다.
어릴 적 기억처럼,
몸에 밴 습관처럼.

사람도 그러겠지.
엄마에 대한 마음도
그렇게 삶의 틈틈이 문득 떠오르는 거겠지.


올해 추석, 나는 친정에 가지 않기로 했다.
잠깐 다녀올까 고민도 했지만,
결국 마음을 접었다.

그곳에 가면
동생들 앞에서 나의 현재 처지가 그대로 비쳐져 속이 상할 것 같았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잘 지내”라고 말해야 할 내가 싫었다.

사실, 어디에도 내가 힘들다고 말할 수가 없다.
그렇게 말하는 순간
정말 내가 무너져버릴 것만 같아서.

그래서 오늘도
말 대신 침묵으로 마음을 다독인다.
그게 나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처럼 느껴지니까.


내가 돈을 벌 수 있을까?

응.
나는 벌 수 있어.

내 능력으로,
내 방식으로.

그리고 언젠가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될 거다.

내가, 내 삶을 오롯이 살아갈 수 있도록.


🍁
2025년 추석은 나 혼자 지내면서 맞는 첫 추석이다.
그냥 조용히 지내고 싶다.

갑자기 문자 한 통을 읽으면서 여러가지 생각들이 떠올라 글을 써 본다.

이런 생각들도 시간이 지나면 모두 잊혀질 수 있다는 생각에.


5년 후 추석에 나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5 년 후의 나야, 지난 과거 패턴과 같은 행동을 하고 살지 않기를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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