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 기억을 부정할 때, 나를 지키는 법

기억을 부정당한 날 — 나를 믿는 연습

지난주 토요일, 막내 여동생과 통화를 했다.
조카가 학교 가는 버스 안에서 어지럽고 메스꺼워 쓰러질 뻔했다고 했다.
검사를 해봤지만 별다른 이상이 없었고, 신경과를 가보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언제 병원에 갈 거야?”
그녀는 대답했다. “화요일 오전 수업이 끝나면 오후에 반차를 내고 가려고.”
조카와 이야기를 해보겠다고 했다.
그래서 화요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화요일이 되자 걱정이 되어 전화를 걸었다.
“병원 잘 다녀왔어?”
그런데 돌아온 말은 뜻밖이었다.
“그런 적 없는데, 누구한테 들었어? ... 언제 간다고 얘기 한 적 없는데... 목요일에 갈 거야.”

그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내가 잘못 들은 걸까?
아니면 정말 그 말이 없었던 걸까?
졸지에 나는 이상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무안하고, 허탈하고, 어딘가 낯익은 감정이 밀려왔다.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다.
남편이 자신의 말을 딱 잡아 떼던 순간들.
나는 내 기억을 믿었지만,
결국 나는 남편의 말 앞에 침묵하게 되었다.
해소되지 않은  그 침묵들이 마음의 상처가 되었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날 저녁, 나는 통화 기록을 확인했다.
요즘은 앱이 대화를 기록해주니까.
그리고 거기에는 분명히 있었다.
“화요일에 갈 거야.”
나는 틀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마음은 조금도 시원하지 않았다.
단지 묘했다.
마치 과거의 그림자가 불쑥 되살아난 듯한, 오래된 불편함이었다.

이제는 알 것 같다.
이건 단순한 말의 엇갈림이 아니라,
내가 경험한 현실이 부정당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내 감정이 틀렸다고 스스로를 탓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굳이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
누군가의 부정이 나의 진심을 바꾸지는 않으니까.


나는 그저 이렇게 말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

“나는 잘 들었고, 잘 기억했다.
다만, 그 사람의 기억이 다를 뿐이다.”

이제는 내 마음을 믿는다.
내가 느낀 것, 내가 들은 것, 내가 기억한 것을
누가 흔들어도 더 이상 의심하지 않으려 한다.

나는 더 이상, 나의 기억을 의심하지 않는다.
나를 믿는 순간, 마음은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


수채화풍으로 그린 중년 한국 여성의 초상. 여성은 손으로 관자놀이를 짚으며 눈을 감고 있다. 얼굴에는 고요하지만 깊은 사색과 약간의 외로움이 묻어난다. 따뜻한 갈색빛 카디건과 파란 블라우스를 입고 있으며, 배경은 크림빛과 연한 금빛이 섞인 부드러운 수채화 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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